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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적드문 계곡서 ‘플라이 낚시’
여행가2
2010. 5. 2. 10:45
‘고립이 빚은 순수’를 낚다 |
‘쏴아아’… 인적드문 계곡서 ‘플라이 낚시’ - ‘졸졸졸’… 차 세워두고 시냇물 소리 감상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그 길을 만난 것을 ‘발견’이라고 해도 좋겠다. 삼척을 찾아가자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을 지나 동해까지 가서 해안선을 따라 7번 국도로 당도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건 아마도 삼척이란 이름이 가진 ‘바다 냄새’ 때문이었으리라. 어쩌다가 태백쯤에서 삼척으로 가야할 일이 있었다고 해도, 잘 다듬어진 38번 국도를 택하기 마련이었다. 그 길도 산촌마을을 지나 달리는 것이니 ‘대로’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러니 험준한 태백산맥을 타고 넘어 울진과 삼척의 경계쯤인 호산으로 닿는 427번과 416번 지방도로를 밟아볼 기회란 거의 없었다. 이쪽으로는 목적지로 삼을 만한 이렇다할 도시나 마을이 없었던 탓이다. 오래된 너와집이 남아 있는 가곡면 신리쯤에서 맞닿은 427번과 416번 지방도로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숲과 물과 자연을 정통으로 관통하는 길’이다. 이렇듯 첩첩산중의 때묻지 않은 자연 속으로 이어진 길이 또 있을까. 태백에서 스위치백 철로가 놓인 통리역을 지나 38번 국도를 버리고 삼척시 경계를 넘어 427번 국도로 접어들면 곧 짙은 천연림의 숲길이 시작된다. 까마득히 붉은 암벽을 타고 내리는 미인폭포 위를 지나서 동활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 구부러진 계곡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불쑥 암봉이 앞을 막아선다. 암봉의 까마득한 벼랑에는 소나무들이 몸을 뒤틀고 서 있다. 능선마다 막 신록이 돋기 시작해 각기 채도가 다른 나뭇잎의 색은 다양한 초록색 물감을 한데 뒤섞어놓은 팔레트와도 같다. 가장 아름다운 때의 숲을 만나는 것이다. 탄성이 저절로 터진다. 그 길에서는 속도를 늦추고, 차창 밖으로 자주 고개를 내밀게 된다. 차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라 뒤꽁무니에 바짝 붙어 라이트를 켜대며 재촉하는 차들도 없다. 간혹 오가는 주민들의 작은 트럭들은 외지인들보다 더 느리게 고갯길을 넘어간다. 산촌마을의 외딴 집들만 하나 둘씩 모습을 보일 뿐, 길가에는 자그마한 구멍가게조차 없다. 인적없는 적요한 산골마을. 이리도 적막한 산골마을의 사람들이 비는 소원은 무엇일까. 길옆으로 마을 주민들이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탑들을 자주 만난다. 동활계곡을 다 내려와 경북 울진군 석포면 쪽으로 이어진 910번 지방도에 올라서면 왼편으로 곧 덕풍계곡이다. 계곡 입구에는 자그마한 산골 분교가 있다. 오저초등학교 풍곡분교.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서있는 작은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축구시합에 한창이다. 전교생을 다 합쳐야 겨우 축구팀 한 팀을 이루는 열 한 명. 그것도 다섯명은 여자아이다. 공을 따라 뛰는 산골마을 아이들의 함성이 고즈넉한 산골마을의 나른한 봄에, 탱탱한 고무공처럼 탄력을 준다. 덕풍계곡 입구에는 여름이면 계곡을 찾아드는 피서객들을 위한 대형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넓은 주차장에 차들은 단 한 대도 없다. 계곡을 따라 비포장길로 접어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동안 덕풍계곡을 너댓번 오르내리며 만난 차는 단 한 대. 그것도 플라이 낚시를 온 낚시꾼들이었다. 서너명의 낚시꾼들이 바닥이 훤히 비치는 계곡의 바위를 딛고 오르내리며 날렵하게 낚싯줄을 던졌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낚싯줄이 유려한 곡선을 그려냈다. 지금이야 비포장도로일망정 차 한대가 간신히 드나들 길이라도 있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비가 조금 내리거나, 눈이라도 내리면 희미했던 길은 막혀버리고 계곡 안쪽 마을 사람들은 꼼짝없이 고립됐다. 사실 안타까웠던 것은 고립된 마을을 바라보는 이쪽에서의 시선일뿐, 세상의 끈을 놓고 그 깊고 험한 오지까지 찾아들었던 사람들에겐 ‘고립’이란 상황도 그리 두려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겨울가뭄으로 수량이 크게 줄었던 덕풍계곡은 며칠 전의 봄비로 물이 제법 불었다. 도시에 내린 비는 흙탕물이 돼서 흘러가는데, 산중에 내린 비는 어찌 이렇게 맑은 물이 돼서 청량하게 흘러가는 것일까. 계곡을 따라 조붓하게 나있는 비포장도로를 차로 오른다. 길이 워낙 좁아 여름 피서철에는 차량이 통제된다는데, 이즈음에는 드나드는 차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하다. 산천어가 사는 물맑은 계곡. 암반과 자갈로 이뤄진 계곡을 3~4㎞쯤 거슬러 올라가면 물의 속도는 느려지고, 계곡은 어느새 너른 개울로 변한다. 개울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5개의 철다리를 건넌다. 다리마다 붙여진 이름이 재미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간다’는 뜻의 ‘버릿교’, ‘칼로 자른 듯한 계곡을 건넌다’해서 ‘칼등모리교’, 지금은 없지만 다리를 만들 때 쯤은 부근에 너른 부추밭이 있었는지 ‘부추밭교’란 이름도 보인다. 다리를 다 건너가면 봉화 쪽의 면산과 울진 쪽의 응봉산 아래 파묻혀 있는 풍곡리 7구 덕풍마을이다. 마을이래야 11가구가 고작. 이중 절반 정도는 산장이름을 내걸고 여름이면 민박을 치고, 다른 계절에는 산에서 채취하는 것들로 먹고 산다. ‘고향산장’의 원계분(여·55)씨가 마침 통통하고 실한 고사리를 캐와서 가마솥에 삶고 있다. 원씨는 “여기는 봄이 늦어 고사리는 막 시작했고, 두릅도 이제야 하나 둘씩 달리기 시작했다”며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은 깊은 산중이라 어디를 들던 산나물이 지천”이라고 했다. 원씨가 이곳을 고향으로 둔 남편을 따라 내려온 지 7년째. 그는 “여름 한철에만 사람들이 몰리지만, 이곳의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록이 물드는 요즘”이라고 했다. 덕풍계곡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본류인 용소골과 지류인 문지골, 괭이골로 이어진다. 응봉산을 내려온 용소골의 물은 먼저 문지골의 물과 합쳐지고 다시 괭이골에서 내려오는 물을 만나 몸을 불린다. 알려지기로는 용소골이 으뜸이다. 계곡의 크기도 가장 크거니와 협곡을 오르면서 만나는 깊은 소가 만들어내는 비경이 빼어나다. 특히 폭포가 힘차게 내리꽂히는 아래의 제1용소는 어찌나 깊은지 짙다 못해 검은색을 띤다. 마을 주민들이 실을 내려 재보았더니 수심이 40m가 넘었다고 했다. 우르르 물소리에 검은 물색에서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제1용소에서는 바위벽의 옆으로 매어놓은 밧줄을 잡고 비탈진 사면을 딛고 올라야 한다. 수많은 와폭들을 지나면 협곡은 요강소와 제2용소로 이어진다. 계곡의 양옆을 막고 치솟아오른 암봉의 틈을 걷다보면 아예 협곡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점입가경. 덕풍마을에서 제1용소까지는 30분 남짓. 여기서 20분 정도 더 가면 제2용소다. 갈수록 경치는 황홀해지지만 길은 험해진다. 밧줄을 붙잡고 직벽을 오르는 코스도 여럿이다. 굳이 계곡의 끝까지 다녀오겠다는 욕심은 접어두는 편이 낫겠다. 응봉산과 줄미등봉의 사이로 이어진 용소골이 거친 자연을 가진 남성미 넘치는 계곡이라면, 줄미등봉과 개족발봉(515m)의 사이로 드는 문지골은 여성스러운 느낌의 아기자기한 계곡이다. 이쪽으로는 아예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드물어 계곡은 무섭도록 적막하다. 용소골에는 간간히 보이는 철제난간도 이쪽에는 아예 없다. 그저 자연 그대로의 계곡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문지골의 초입은 초록의 숲길이다. 발밑으로는 이제 막 꽃을 틔운 야생화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직 신록이 성글긴하지만, 금세 온몸에 초록물이 들 것 같은 길이다. 이제 막 돋기 시작한 초피(젠피)나무의 새순에서 알싸한 향이 풍긴다. 숲길이 끊기면서 계곡의 바위를 딛고 내려서서 잠깐만 걸으면 제1폭포를 만난다. 폭포의 높이는 낮지만, 좁은 바위 사이에서 숨겨지듯 쏟아지는 물줄기가 마치 수줍은 처녀의 모습이다. 폭포 아래 투명한 소에는 ‘퉁퉁소’란 소박한 이름이 붙여져 있다. 물길을 따라 계곡을 더 오르면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와폭과 투명한 물빛의 소들이 이어진다. 곧 제2폭포다. 바위를 둥글게 깎아낸 물줄기가 마치 치마처럼 펼쳐진다. 거센 물살에 바위는 동글동글 깎여있다. 폭포 아래는 물빛이 가마소다. 협곡을 따라 심마니터와 신선들골, 소라리골 등이 이어진다. 심마니터란 이름답게 마을 주민들은 몇년 전 이쪽 계곡에서만 27뿌리의 산삼을 캐기도 했단다. 이쪽 계곡 역시 올라갈 수록 길이 흐려지고 험해진다. 제2폭포까지의 오르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 그렇듯 경사도 낮다. 제2폭포에서 제3폭포까지도 30분이면 가 닿는다. 3폭포부터는 바위를 옆으로 돌며 밧줄을 잡고 수직바위를 내려가야 하지만 4폭포까지도 그리 멀지 않다. 그러나 5폭포와 6폭포에 이르는 길은 사뭇 멀고 거칠다. 암봉이 막아서는 수려한 경치야 오를수록 더 좋지만, 산행경험이 많지 않다면 3폭포까지만, 좀 더 간다해도 4폭포에서 돌아오길 권한다. 아쉽긴 하겠지만 신록이 물든 계곡의 진수를 보는데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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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늘의 좋은시
글쓴이 : 예지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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