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으로의 慢行
2011. 2. 19 토요일에 그 동안 중국을 다녀 오느라 산사랑 산악회의 정기산행을 빠졌고 또 27일 2차 산행도 사협 정기총회 때문에 서울을 가야하므로 빠지겠기에 그러면 2월에는 한 번도 산행을 못 할것 같아 가까운 용인으로 가벼운 산행을 하기 위하여 친구인 박해석 시인과 오전 10시에 송탄을 출발하였다.
안성 고속도로를 지나 일죽 휴계소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삼죽면의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지나니 백암면 창평리 동네 앞에 조천사 들어가는 이정표가 보였다.
조천사 앞마당에는 용인에서 가장 높은 산인 구봉산까지 가는 등산 안내판이 잘 되어 있었다. 오늘은 박해석 시인이 장시간의 산행을 힘들어하여 정배산으로 하여 반계선생님의 묘소를 참배하는 트래킹 수준으로 돌아보기로 하였다. 가을에 단풍이 들었을 때 구봉산까지가는 산행을 다시 한번 와보아야 겠다.
조천사는 대웅전과 산신각은 그런대로 모양을 갖추었지만 요사체는 지붕을 비닐로 덥은 것이 조금은 가난한 절로 보였다, 주지 스님도 젊으신 분이 셨다.
조천사에서 조비산 올라가는 길은 북사면이라 그런지 잔설과 얼음이 녹지않아 많이 미끄러웠다.
조천사에서 한 20분을 올라가면 조비산의 정상인데 정상에는 나무데크가 아주 커다랗게 잘 설치되어 있었다.
조비산의 풍광은 용인 8경의 하나라 용인시에서 잘 만들어 놓은 것 같았고, 조비산의 조망이 일품이라는데 이날은 스모그가 심하여 좋지 않았다.
조비산의 정상석은 새가 날라 간다는 이름에 걸맞게 새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도 정상석 옆에서 인증샷을 하여 본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는 수직벽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정상 밑에 있는 동굴에서 록크라이밍하는 안성 사람을 만나다. 혼자서 많은 로프를 갖고 오고 암장에는 많은 볼트가 박혀있는데 그가 박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완전히 록크라이밍 전문가이다.
조비산은 전체가 하나의 큰 암반으로 되어 있는데 밑에는 누가 만든 것인지 사람은 100여명이 들어 갈 만한 커다란 인공굴이 있었다.
굴속에는 무속인들이 많이오는지 무속인들이 만들어 놓은 기도처가 3곳이나 있었다.
동굴 앞에는 커다란 광장으로 용인시에서 만들어 놓은 운동기구도 있고 케른도 3개나 조성되어 있었다.
조비산에서 구봉산까지는 이런 이정표가 잘 되어 있는것 같다.
정배산 가기 전에 돌아 본 잘 다듬어진 묘소와 조비산의 측면 원경
정배산 가기 전에 반계선생님의 묘소 표시를 보고 선생님의 묘소로 방향을 바꾸다.
반계 유형원선생님은 조선시대 제1세대 실학자로 유명하신분이다.
제2세대인 성호 이익 선생님과 조선시대의 커다란 실학사상의 태두인 3세대 다산 정약용선생님등에 큰 영향을 끼치신 인물이다.
평생을 벼슬을 하지않으시고 부안의 우반동에서 몸소 실학사상을 실천하시면서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신 분이다.
선생님은 부안의 우반동에서 평생을 사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다가 우반동에서 돌아가셨는데 용인에 묻히신것은 ,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의 묘소가 있는 용인으로 이장하여 모신 것이다. 항상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신석을 애석해 하시면서 지극한 정성을 다하셨단다.
선생님의 반계수록 26권은 돌아가신지 100여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아 영조임금님과 정조임금님의 사상에 지대한 공헌을하여 이조 500년중에 영정시대를 가장 백성이 편안하고 살기좋은 시대라고 하는것이 선생님의 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선생님의 문재를 조금은 갖고싶은 소망을 빌어보다.
선생님의 묘소를 내려 오면서 박해석시인이 하도 사진을 안찍느다고하여 선생님의 기를 받으라고 함자와 박해석시인을 같이 담아보다.
선생님의 묘소를 가르키는 이정표는 황새울 관광농원 가는길에 3군데에 표시되어 있었다.
조비산의 정면을 당겨서 찍어보다 . 정상에 표지석과 덱크가 보인다.
백암으로 오는 길에 MBC 드라마 촬영장이 보이기에 구경하려고 하였더니 현재 드라마 촬영중이라 입장을 안시켜준다.
7월 중에는 유료로 관광객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줌으로 당겨보니 상당히 많은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백암순대로 유명한 백암장을 찿았더니 순대가 요사이 구제역 때문에 많이 만들지 못하여 일찍 떨어진단다.
할 수없이 순대국 한그릇과 막걸리 한병으로 해결하고 송탄으로 돌아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