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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윤 희 경 참(眞)의 사전적인 뜻은 '겉과 속이 맞아 거짓이 없음'으로 되어 있다. 꽃에도 참꽃과 개꽃이 있다. 참꽃은 진달래, 개꽃은 철쭉을 말한다. 둘 다 철쭉과에 속하면서 하나는 참꽃, 철쭉은 개꽃이다. 옛날 보릿고개나 흉년이 들면 밥 대신 진달래꽃으로 배를 채워야했기 진달래는 참꽃이 되었다. 철쭉 입장에선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하고 가슴을 칠 일이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보면 밥은 진실이며 생명인 것이다. 사람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다는 사실이 진리이며 참이다. 진리는 삶의 진실, 목숨과 깊은 관계가 있으므로 진달래는 참이고 철쭉은 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철쭉은 억울하지만 '개똥밭에 이슬 내릴 날을 기다리며'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쭉꽃은 연분홍빛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꽃부리에 자주색 점이 점점이 박혀있다. 이 꽃을 먹지 못하는 이유는 꽃에 진득거리는 점액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생각.'에 진달래꽃으로 잘못 알고 철쭉을 따 먹으면 기진맥진 기운이 빠져 나른해진다. 그러나 철쭉이 꼭 개 꽃 취급만 받는 건 아니다. 살다보면 개똥밭에도 이슬내릴 날이 오게 되어있다. 역사를 한 참 거슬러 올라 신라 향가 '헌화가(獻花歌)'를 만나면, 철쭉은 한 미모의 부인과 선승(禪僧)의 사랑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풋풋했던 학창시절을 되돌아 볼 겸, 이 봄이 가기전에 다시 한 번 추억여행을 떠나보자.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출전: 삼국유사 <헌화가 전문> 소박하고 짧은 4구체의 서정적 향가이다. 그러나 이 속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강릉태수 순정공과 미모의 수로부인이 강릉 행차 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 때이다. 병풍처럼 에둘러있는 천 길 낭떠러지 벼랑에 연분홍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떨고 있다. 오월 바닷바람에 알싸한 철쭉 내음이 밀려와 부인의 코를 간질이고 오감(五感)을 자극한다. '아, 예쁘기도 해라. 누가 저 철쭉꽃을 꺾어다 줄 사람 없을까.' 요염을 떨며 남자들을 미치게 만든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또 나서봐야 크라이머가 아닌 이상 올라갈 곳이 못된다. 시종이 보다 못해 '부인, 사람의 발붙일 곳이 못되옵니다.' 마음을 달래보나 헛수고다. 모두 어린 짐승이 되어 벼랑만 쳐다보고 있다.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순간 암소를 잡고 견우노인(선승)이 나타난다.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다 바치오리다.' 수로부인 미색에 선승 가슴이 무너져 연녹색 파란 물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생각하기 따라선 파계나 다름없는 러브콜이다.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도치법을 사용해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얼마나 미인이었으면 이리 명문의 시구(詩句)가 떠올랐을까. 짐작 컨데 주인공은 <일연> 자신이 틀림없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五월 山골짝이 하루가 다르게 수런가린다. 이른 아침부터 쏙독새 '쏙 쏙 쏙' 연초록 잎을 썰어내기 바쁘고, 휘파람새 한 쌍 '호이 호오이' 사랑의 숨바꼭질이 한창이다. 철쭉꽃 흐드러지게 피어나 수줍고 청순한 모습으로 꽃그림을 그리고 있다. 철쭉꽃 사이로 쏜살같이 여름이 오고 있다. 나도 휘파람새 되어 '홀딱홀딱' 오월 숲속 미인을 불러보건만, 산은 말이 없고 휘파람소리 메아리 되어 콧등에 맺힌 땀 방울을 송알송알 씻어 내리고 있다. - 윤희경의 포토에세이 [그리운 것들은 산밑에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