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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나무 이야기 / 법정스님

여행가2 2010. 5. 2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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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이야기
                                                                / 법정 스님
            나무들은 여름철에 자란다. 
            특히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은 장마철에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란다. 
            내 거처의 둘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소나무와 전나무, 가문비나무들이 
            이 여름에 두 자도 넘게 그 우듬지가 자랐다. 
            자작나무도 그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펼쳐냈다. 
            이토록 왕성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람은 산소를 만들지 못하고 맑은 공기를 더럽히기만 하는데, 
            이런 나무들이 산소를 만들어 내고 더러워진 공기를 정화한다. 
            나무들은 메마른 대지에 그늘을 드리우면서 
            초록과 생기를 내뿜어 쾌적한 환경을 이룬다. 
            그리고 뿌리에 물기를 머금었다가 그때그때 나누어 준다. 
            수자원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나무의 집합체인 숲이 
            이 지구상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서양 사람들에 의해 잘못 길들여진 
            육식 위주의 식생활과 과도한 소비 때문에 
            이 지구의 숨통인 열대우림이 소멸되어간다. 
            두려운 일이다. 
            어떤 수종이 됐건 우람하게 서 있는 거목을 보면 외경(畏敬)스럽다. 
            늠름한 그 기상과 신령한 기운 앞에 조심스럽다. 
            수백 년 묵은 고목 앞에서 
            치성을 드리던 옛사람들의 그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어찌 그것을 미신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겠는가.
            
            내 오두막 뒤 개울 건너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는데, 
            이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영하의 추위와 폭풍우에 시달리면서도 
            의연하게 우뚝 서 있는 나무. 
            추위와 더위, 눈비와 바람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인다. 
            어느 해 겨울 눈보라에 한쪽 가지가 반쯤 꺾여 나갔다. 
            설한풍에 한쪽 팔을 잃고서도 나무는 여전히 정정하다. 
            척박한 자갈땅에서도 새 가지를 펼치고 솔방울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인고의 작업이다. 
            나무마다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 몸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그 나무의 얼굴이고 삶의 흔적일 것이다. 
            그 나무가 어떤 세월 속에서 얼마만큼의 고통을 겪었는가는 
            거죽만 보고서는 잘 알 수 없다. 
            나무에 숨이 멈춘 뒤 그가 남긴 나이테를 통해서 
            그 세월과 고통의 응어리를 짐작할 수 있다. 
            이건 나무만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살아 있는 나무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 
            폭풍우에 가지가 꺾였더라도 꺾인 대로 두어야 한다. 
            공연히 거기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자연’을 훼손하게 된다. 
            사람의 눈이 어찌 자연만 하겠는가. 
            내가 전에 살던 암자에는 
            한 아름이나 되는 후박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옛터에 암자를 새로 지을 때 손수 심은 묘목이라 
            내 눈길과 함께 자란 나무다. 
            그리고 암자 뒤에는 백 년도 더된 굴참나무가 
            우람한 가지를 펼치고 있었다. 
            그 가지에 여름이면 꾀꼬리와 소쩍새가 깃을 쳤다. 
            
            한번은 그 암자에 들렸더니 
            후박나무 가지를 3분의 1이나 베어낸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윗가지만 남기고 아래가지는 모조리 쳐낸 것이다. 
            그토록 아름답고 의젓한 나무의 모양이 
            형편없이 초라해지고 말았다. 
            집 뒤에 우람하게 서 있던 굴참나무도 
            그 가지들을 잘라내어 볼품없이 만들어 놓았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가지를 베어낸 것임을 알고는 
            나는 더욱 놀랐다. 
            자연의 얼굴인 나무가 
            어찌 줄기만으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뿌리와 줄기와 가지가 한데 어울려 생명의 조화를 이룬다. 
            나는 그때 가지를 잘려 풀이 죽어있는 후박나무와 굴참나무를 보고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었다. 
            내가 현장에 없어 그런 참화를 입게 됐구나 싶으니 
            나무들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나는 내가 몸담아 사는 곳이면 
            나무와 화초를 즐겨 심고 가꾸었다. 
            지금은 게을러서 그런 열기가 많이 식었지만 
            그전에는 열심이었다. 
            50년대 말 해인사에서 통도사로 잠시 살러 갈 때에는, 
            저 아래에 있는 여관 연못에서 얼음을 깨고 들어가 
            수련 뿌리를 캐어 가지고 가서 꽃을 피웠다. 
            다래헌 시절에도 연못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꽃을 즐겼다. 
            지난 봄 온양 인취사에서 분양 받은 백련 뿌리를 
            겨울 동안 신세 진 동해안의 거처에 기념으로 심었다. 
            커다란 자배기에 밭 흙을 담아 양지바른 곳에 두고 
            물을 끌어 대었다. 
            며칠 전 그 집에 가 보았더니 
            너울너울 자라 오른 연잎 사이로 
            꽃봉오리가 두 송이 우뚝 솟아 있었다. 
            너무 반갑고 기특해서 탄성을 질렀다. 
            연못이 아닌 곳에서도 꽃을 피우는 연이 참으로 대견했다. 
            
            남쪽에서 옮겨다 심은 파초도 
            무성하게 자라 청정한 잎이 바닷바람에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때 인취사에서 함께 얻어온 흰 백일홍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 바닷가 오두막에 
            백련과 흰 백일홍이 꽃을 피우면 볼 만할 것이다. 
            모처럼 만난 집주인과 마루에 앉아 차를 마셨다. 
            새로 든 이집 주인은 풍류를 아는 분이라 
            파초 잎을 꺾어다 찻상위에 깔고 그 위에 다기를 차려 놓으니 
            차를 마시기 전부터 맑은 기운이 차 향기를 돋우었다. 
            뒤꼍에 심어 놓은 다섯 그루 소나무도 
            자리가 잡혀 새움이 많이 돋았다. 
            칡넝쿨이 감고 올라 낫으로 그걸 걷어냈다. 
            심어 놓은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는 걸 볼 때마다 대견스럽고 
            생명의 신비 앞에 숙연해진다. 
            내가 외떨어져 살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내 길을 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람보다 나무들이 좋아서일 것이다. 
            홀로 있어도 의연한 이런 나무들이 
            내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거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들이여, 고맙고 고맙네!  
            
             - 홀로사는 즐거움 中 -
            * 오늘..
              스님 원적하신지 11주째(77일) 되는 날... 
              - 그림 / 하삼두화백
              - 음악 / an irish blessing / Roma Downey & Phil Coulter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수정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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